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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일상

양복 그리고 백세주

목포에 세미나하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날이 쌀쌀해서 양복을 바꾸어입었는데 배가 싫다더군요.

그래서 오전에 근처 양복집에서 한벌 장만했습니다.
좀 넉넉한 것을 고르니까 점원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른 옷을 골라주더군요.

바지길이를 조정해서 갖다달라고 해놓고, 돌아와서 김밥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환자분들을 다 치료하고 시간을 보았습니다.

아직 기차시간까지는 충분하다 싶으면서도 확인 차 기차표를 보았더니
이게 왠 일입니까? 1시 40분 기차가 아니고 1시 13분 기차였습니다.

양복집에서 갖다놓은 양복으로 바꿔입으면서 김밥포장한 것을 찾으니,
이게 또 왠 일입니까? 우리 치과위생사가 친절하게도 먹기좋게 펼쳐 놓았습니다.

할 수없이, 김밥을 두개씩 입속에 넣어가며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넥타이도 오랜만에 하려니까 잘 매어지지도 않더군요.

정신없이 챙기고 속보로 열심히 걸었습니다.
역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안되걸랑요.

걸으면서 양복이 좀 이상한 것을 알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옷소매끝을 만져보니 점원이 크다고 말한 그 웃도리같았습니다.

역에 도착해서 양복집에 전화로 확인을 해보니,
이게 또 왠 일입니까?  정말 양복이 바뀌었답니다.

기차도착시간까지는 3분밖에 안남았는데, 그 점원이 기다리랍니다.
기차가 먼저오면 어쩌나 하면서 개찰구를 눈빠지게 보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기차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점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슨 스릴러 영화의 한장면 같더군요.

기차가 정차하면서, 옷은 교환되었고 나는 무사히 목포행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속이 언짢아지면서 체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목포에 도착하여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속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흘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를 초대한 병원 원장님이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시더군요.
사부사부를 잘하는 집이 있다시면서 그 곳으로 둘이 갔습니다.

얹힌 속에 술한잔 들어가면 살 것 같았지만,
세미나를 하러 온 강사가 술먹자고 할 수는 없어서 그냥 고기만 먹었습니다.

고기가 점점 없어지면서, 안주가 사라지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처럼 다정하게 들리는 소리..."선생님, 술한잔 하시겠습니까?"

저는 예라는 대답과 함께, "아줌마, 여기 백세주요!"를 외쳤습니다.
알콜중독자를 보듯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속이 얹혀서 그랬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전 그 원장님은 술을 못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술이야기를 꺼내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술 한병이 턱하니 제 앞에 놓이는 순간,
이 술은 다 내꼬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주당이랍니다. 그 원장님이... 허, 참!

어쨌거나 절반은 내 몫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서,
고기가 남은 것에 맞춰서 술을 아껴 마시고 있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드디어 술병바닥을 채우던 술이 내 잔에 따라지고,
고기도 딱 알맞게 남아서, 정말 안성맞춤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러나 신의 장난일까요?
이게 왠 일일까요? 엎었습니다. 왜 엎었는 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엎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남은 고기를 빨리 가져와야될 것 같았던 분위기였기도 합니다.
그 선생님도 무척 잘 드셨걸랑요.

엎는 순간, 술이 내 앞으로 쏟아지면서 처음 입은 양복이 젖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대개 얼른 발을 치우면서 옷을 닦잖아요? 저도 전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저의 행동이 좀 묘했습니다.
발은 그대로 있고, 넘어진 잔을 얼른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유가 뭐냐구요?
그걸 말이라고 물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그래도 조금이라도 남았으면 잔을 기울일 수는 있지만
이건 기울이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머리 속에는 "아줌마,한병더!"라는 생각이 떠오른 다음, 사라지지 않고 있었지만,
강사가 술한잔 더하자고는 절대 못하겠더군요.

정말 그 날은 술이 너무나도 아까운 날이었습니다.
그 영향이었는 지, 지난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내리 나흘을 술독에 빠졌답니다.